청소년사역생태계디자이너
kdm96 아내 김은미와 김소원, 김성원, 김시원, 김이원 네 아이의 아버지이며, 파이디온 선교회 청소년 사역 팀 선임간사로 섬기는 김대만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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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논쟁과 제자도2013-04-22 17:46 누가복음 6장 1절에서 11절에는 안식일과 관련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특별한 논쟁 두 개가 연이어 등장한다. 6장 1절부터 5절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 이삭을 꺾어 비벼 먹던 일로 인해 촉발된 논쟁 사건이 등장하고 6절부터 11절까지는 안식일에 들어가신 회당에서 오른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해 주신 사건이 나온다. 의사였으며, 역사가였고, 신학자이며 동시에 세번째 복음서의 저자인 누가는 이 안식일 논쟁 두 개에 이어서 '열 두 제자의 부르심' 사건을 연이어 배치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사건 1. 누가복음 6:1-5 먼저 살펴볼 것은 누가복음 6장 1-5절에 나오는 사건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는 일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왜 하필 밀밭으로 지나가셨나?, 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밀밭을 통과하지 않는 길도 있을 것을 것이다. 멀리 돌아서 갈 수도 있고, 다른 길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길도 없는 곳에서 밀밭을 열어 길을 내며 그 한 가운데를 지나가셨다(막2:23- 개역개정성경, 마가복음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라고 기록한다. 아래 주석에 보면 '가며'라고 병기하고 있지만, 이는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그림을 충분히 상상하게 한다.). 요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표현처럼, '충분히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튼 주요사실은 누구라도 충분히 밀 이삭을 꺾어 먹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계책(?)에 여지없이 말려든 것 같다.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던 것이다. 실은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호주머니 한 가득 땅콩을 집어 넣어 놓고, 절대로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과 같은 그런 기분이 아니었겠는가?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인지, 아니면 심심해서 였는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그랬는지, 밀 이삭을 꺾었다. 그리고는 비볐다. 그리고는 밀알을 잎에 털어 놓고는 맛있게 먹었다.(뭐,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겠는가? 혼자서.... 문제는 그런 제자들이 열 둘이나 된다는데 심각성이 조금 있긴 하다. 그래도 뭘.) 허 참. 그런데, 재미있는 셋팅은 희안하게도 그 자리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다 보고서 한 마디를 한다.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우선은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해 보자. 제자들이 밀밭에서 밀 이삭을 꺾어 먹으면 안된다는 말인가? 이건, 그렇지 않다. 분명하다. 썩 좋은 행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해서는 안될 그런 팔염치하고, 질 나쁜 범죄 행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는 출애굽기 23장 25절의 말씀 때문이다.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무슨 말인가? 남의 밭에 트랙터를 들여 보내서 마음 먹고 대놓고 전량을 다 추수하는 행위나, 낫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손으로 이삭을 꺾어 손에 잡히는 만큼 가지고 나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물론 이 말씀은 특별히 굶주리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구휼 기능에 대한 규정이지, 부자가 장난으로, 또는 지나가는 사람이 심심풀이로 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해 놓은 집 없이 늘 예수님과 함께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제자들은 거의 뭐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본다면야, 그들이 배고픔 때문에 밀 이삭을 꺽었다고 한다면 더 이상의 할 말은 없다. 출애굽기의 규정이 그렇게 용인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방점은 그들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역시 '안식일에' 두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식일에 회당에나 있고, 집에나 계실 것이지, 그들이야말로 무슨 좋은 구경이 났다고 예수님 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며 잔소를 늘어놓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암튼, 바리새인들의 지적은, 그런 일은 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날도 아니고, 안식일에는 하면 안되지, 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면, 대체 안식일에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꺾어서는 안된다. 비비어 먹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내용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없다고? 없을 거라고? 아니다. 있다. 있기는 있다. 출애굽기 34장 21절에는 특별한 안식일 관련 규정이 나온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출34:21)" 이 구절 속에 안식일에 그렇게 해라는 말씀은 명시적으로 없지만, 엿새를 일하고 다음 날인 일곱째 날에는 쉬라고 했으니까 이 날은 유대인들이 안식일로 지키는 날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농번기의 농부들에게 있어서 하루를 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시기나, 추수하는 시기에는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한 시바삐 밭을 갈고 씨뿌리기를 끝내야했고, 하루 빨리 추수를 끝내놓아야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율법의 규정은 어김없이 아무리 바빠도 안식일에는 일손을 놓고 쉬라고 한다. 그런데, 밀밭 사이길을 지나다가 이삭 대가리 몇 개를 손으로 끊어 비벼 먹은 것이 무슨 그런 큰 일이라고 호들갑이란 말인가? 밭에 낫을 대기를 했나? 트랙터를 돌리길를 했나?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무슨 그런 수선을... 우리는 충분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율법의 한 항목, 한 조항을 있는 그래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모든 율법 조항을 자구적으로 다 지킨단 말인가?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율법서에 나오는 굵직굵직한 조항들을 다 쪼개서 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없는 일들을 상세하게 만들어 다 구분해 놓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의 집 뒷 마당에서 닭이 알을 낳았다. 닭이야 뭐 그날이 안식일이든 평일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 아닌가? 낳고 싶으면 아무 날이라도 낳는 것 아닌가? 헌데 알을 네 개 낳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그냥 놔두자니 다음 날이 되면 상하거나 들짐승이 먹어버려못 먹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무릎을 탁 치고 새로운 규정을 하나 만들었다. 알 세 개까지는 허용, 네 개째 부터는 율법을 어기는 일!! 탕탕탕. 이렇게 규정을 만들었다. 길을 가다가 흙먼지를 마시고 목이 칼칼했다. 입 안이 꺼끌꺼끌해서 침을 뱉고 싶은데, 그렇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침을 뱉었다가는 큰 일. 만약 이 침을 흙바닥에 뱉으면, 이는 마치 밭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해서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이라는 세부 규정 때문이었다. 침을 뱉으려면 꼭 바위에 뱉어야 했다. 그건 규정상 괜찮다고 한다. 뭐, 이런 식이다. 근거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거까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방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마음껏 켜지도 못하는데, 그러면 꼭 그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한국 유학생을 불러서 불을 켜게 한다고 한다. 나는 안되지만,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해도 덜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인가보다. 암튼 길어졌는데, 그런 지엄한 율법의 생활 규정에 의거하면, 밭에서 밀 이삭을 꺽는 일은 '추수행위'요, 손으로 비비어 까는 행위는 '탈곡행위'로 이는 지엄한 출애굽기 34장 21절의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었으니, 안식일에 대한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 틀림없었던 것이었다. 헌데, 안식일에는 추수행위를 포함한 어느 일도 하지 말라는 규정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준거틀인 십계명 제4 계명에 해당하는 진짜 중대한 율법 계명에서부터 나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족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이 제4계명은 십계명이 기록된 출애굽기 20장 2절부터 17절까지 16절 가운데서 무려 4절에 걸쳐 하신 말씀으로 여섯 또는 일곱 자로 덜렁(?) 끝나는 6, 7, 8계명에 비하면, 그 물리적인 비중이 엄청난 조항이라는 것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무언의 압력이 느껴지는가? 다른 계명도 그렇지만, 특히 4계명, 안식일 조항만큼은 정말 잘 지켜라~ 하는 압박이 느껴져야 한다. 오호~ 이 계명에 의하면, 안식일은 정말 제대로 안식하며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날이다. 6일간 최선을 다해 일하되, 7일째 날에는 정말 죽은 듯이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 엄마, 아들, 딸, 남종, 여종, 가축과 반려동물, 심지어 하루 머무는 객이라도, 누구든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된다. 자칫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그 손발을 놀렸다가는 규정에 딱 걸려, 거룩함에 얼룩을 묻힌 순간, 계명을 어기는 잘못을 범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지엄한 세부 규정과 율법과 심지어 계명을 어기고 발측하게도 밀밭에서 밀 이삭을 꺾어 비비어 먹다니, 계명과 율법의 조항과 세세한 규정에 목숨을 거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는 있을 수 없는, 용인할 수 없는, 용납하기 힘든,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이만..... 해가 져서, 다음 날이 되려는 시점이 와서.... 쿨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