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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은미와 김소원, 김성원, 김시원, 김이원 네 아이의 아버지이며, 파이디온 선교회 청소년 사역 팀 선임간사로 섬기는 김대만 목사입니다. 청소년 사역 생태계 운동 디자이너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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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논쟁과 제자도 22013-04-23 11:02

(다음 날 다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어긴 제자들의 행위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시시비비을 따지는 비난에 대해서 예수님은 구약 다윗의 일화를 인용해서 그들의 비난을 방어하시고, 인식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으니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 무슨 말씀이셨을까? 성경의 기록은 이렇다.
사무엘상 21장 1-7절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핲에서 물려 낸 떡 밖에는 없었음이라 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이 진설병은 규레에 따라 성소에 제물로 차려놓는 떡이었다. 새 떡을 차리면 묵은 떡은 제사장들이 먹어도 괜찮았다(레24:5-9).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뿐이었다.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레24:9)" 무슨 말씀인가? 성소에 진설했다가 되돌려 나오는 이 떡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서 제사장들이 먹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어떠했는가? 다윗 역시 진설병의 규정을 알았을 것이고, 제사장 아히멜렉은 진설병 규정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확실히 알고, 제대로 지켜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이 먹을 것을 찾았을 때, 제사장은 진설병은 대안으로 제시했고, 다윗은 이를 받아들고 가서 자기도 먹고, 자신의 소년들에게도 나누어 함께 먹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이 사건 끝에, '그들이 거룩한 떡을 함부로 먹음으로 징계를 받았더라.'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 다윗과 함께 그들 모두는 괜찮았다. 

이것으로 볼 때, '규정은 있지만, 강제할 힘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규정은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다스리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법은 법치국가 운영을 위한 기본 토대는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후에 왕이 되는 다윗과 현직 제사장 아히멜렉은 서로 담합하여 규정을 규정대로 준수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안식일 계명이 나오게 되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천지창조 사건을 통해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1-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난 6일 간의 창조 사역을 다 마치시고 나서, 그 다음 날인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이다. 안식일은 인간이 임의로, 인위적인 발명을 통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명령하신 대로(출20:8ff) 안식하며 쉬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안식'은 창조의 원리 가운데 포함이 된 것이었고, '안식일'의 쉼은 창조주 하나님의 행위에 따른 인간의 순종적 반영의 행위였다. 하나님께서 쉬셨기에 인간도 쉬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한다. 그래야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이윤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감과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 쉼 없이 일하면, 노동의 효율을 더 떨어지고, 생산성은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경제논리로만 이야기해도 그렇거늘, 정서적, 관계적, 신체적, 영적 이유는 훨씬 더 많을 뿐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쉬어야만 한다. 

안식일의 기본 원리로부터 '인간의 생존권'이 나온다. 안식은 놀이로서의 쉼이 아니다. 지적 유희로서의 쉼도 아니다. 안식의 진정한 의미는 '생존으로서의 쉼'이다. 안식은 인간의 생명과 절대적으로 관계된다. 쉼이 없는 중한 노동은 생명의 위협을 가져온다. 적절할 때에, 적절하게 쉬지 않은면 '죽는다' 
어느 중고등학생에게 있어서의 가장 즐거운 놀이는 컴퓨터 게임이다. 이 친구들은 컴퓨터 게임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한다.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활동도 거부한 채, 오랜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몰입한다.  그런데, 그러다가 덜컥 죽는 일들이 실제로 발생을 한다. 정말 열심히 일하듯 게임을 했는데, 이를 몸이 받아줄 수가 없는 것이다. 과도한 수고는 결국 사람을 죽음으로 끌어 내리고야 만다. 정말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 아닌가?
성인의 노동도 그렇다. 쉼 없이 계속 일을 하고 있자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엄청난 사인이 간다.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짜증나고, 불편하고, 등등등 그렇다. 그러다가 협심증, 뇌출혈 등이 오면 강제로 쉼을 당하고야 만다. 자칫하면 귀한 목숨을 인생 저편으로 돌리고 말게 된다. 

창세기 2장 3절을 다시 보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일곱번 째 날을 복되게 하셨다. 그리고는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의 속성을 '복'과 '거룩'으로 설정하신다. 의무적으로 안식해야 할 날을 정하시면서, 이 날을 지킴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잘 쉬는 것이야 말로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로 인한 '복'을 누리는 것이 된다,고 하신다. 마음으로는 그런 저런 규정 없이 일하고 싶으면 그냥 일하고, 쉬고 싶으면 그냥 쉬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의무적으로 쉬어라.'는 규정이야 말로 납득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납득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시다. 그래서 안식일은 사람의 생명을 걱정하신 하나님의 최선의 배려였다. 그래서 인간의 생존권은 이 '안식', '쉼'이라는 창조의 원리로부터 도출된다. 하나님은 쉬지 않으셔도 되는 분이셨다. 하나님이시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은 철저하게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차원에서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안 쉬셔도 되는 하나님께서 꼭 쉬어야 하는 인간을 위해서 하루를 쉬시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아시는 창조주이시니까 말이다. 

다시 사무엘상의 다윗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왜 그는 제사장만의 진설병을 낼름 받아 먹고, 그의 소년들에게도 주었을까? 아니, 그것이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다윗과 그의 소년들의 생존권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파 죽게 된 사람들'을 구휼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설병이 제공되는 데 대한 어떤 법적 책임을, 어느 누구에게도 묻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 가진 진정한 참된 의미였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일로 사람이 살았는데, 뭘!"

사건 2. 누가복음 6:6-11
이제 다시 안식일 논쟁의 현장 속으로 되돌아가 보자. 특별히 6장 6-11절에 나오는 두 번째 안식일 논쟁 속으로 가보는 거다. 이 본문에서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던 일화가 나온다. 어찌된 일인지 그 가운데는 '오늘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았다. 치사한 놈들. 엿보는 건 뭐하는 짓이가 모를 일이다. 

헌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 그러고는 손 마른 사람을 불러 일으켜 세우셨다. 얼떨떨한 그는 영문도 모르고 사람들 앞에 섰다. 많은 사람이 주목했다. 그는 그의 오른손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신체적 문제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는 사회적인 통념들이 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의 이목의 집중을 온 몸으로 받았다. 이런 기분은 정말 더럽고 싫다.

게가다 예수님이 이 사람의 장애를 두고 논쟁의 소재를 삼으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하신다. 허나,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문제에 정답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 이렇게 대답해야만 했다. 지극히 사회화된 교육을 통해 외운 정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야 한다. 
맞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 상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이런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개념이 아니라, 율법 규정에 꽁꽁 싸여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 그 이상의 다른 생각의 여지가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 질문은 딜레마 게임에, 장기에서의 외통수였다. 이리 말하자니, 사회적 기본 상식에 안 맞고, 저렇게 말하자니, 그동안 자신이 견지해 온 율법 해석에 안 맞고.

그러니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드디어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네 손을 내밀라." 그러자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어떴을까?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당연한 귀결 아닌까, 열받고 화나고 짜증나는 것은 바리새인들 뿐이었다. 서기관들 뿐이었다. 개망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속 시원하게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답을 하지 못함으로, 그 자리에 있던 일반 사람들로부터 '선행과 구원'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뒷담화를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제 앞 전 안식일 논쟁의 결론이었던 6장 5절로 돌아가보자.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논의의 결론을 맺자면, 예수님은 안식일로 설명되는 '생명'의 주인이시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이 단순히 '안식일을 잘 지키는지 잘 못지키는지를 확인하고 검사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관리인'이라고 읽히나? 물론 아닐 것이다. 절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그토록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창조주이시며, 구원 계획의 설계자이며, 실행자이신 하나님으로서 '생명의 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 

안식일은 단지 그 날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경배하며 영광을 돌려드리는 예배하는 날이라고만 생각하면 너무 좁게 생각한 것이다. 안식일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 함께 생명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날이다. 이 날은 예수님과 함께 생명의 날갯짓으로 드높은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진짜 자유로운 인간성을 지닌 '한 생명'을 위한 '생명의 날'이다.  예수님은 그 한 생명의 '생명'을 진짜 생명력 있는 '생명'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율법의 요구를 극복하고 뛰어 넘으며 승화하과 완성하셨다. 그리고는 이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신다. 

"더 이상 율법의 규정에 매이지 말고, 율법의 진짜 의미를 밝혀 하나님의 원래 마음을 알아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함으로 생명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려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네 생명의 주인이시다."

이어지는 6장 12-16은 제자 선발 최종 결과가 나온다. 모두 열 두명.
6장 본문에서 살펴보자면, 이들은 모두 다 '사회적 규범과 규정에 매인 사람들'이 더 이상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논의를 마친다. 예수님의 진짜 제자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생명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다.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 가운데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진짜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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